삽질은 힘들다. 삽질을 해야 하는데 할 수 없는 것도 고역이다. 삽질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건 이중의 절망이다. 석탄 앞에서 몸이 푹 꺾인다. 나는 삽질이 조금도 두렵지 않다. 두려운 건 나다. 삽질을 하는 도중에 딴생각을 할까봐. pp.96
나는 무너지기 직전이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목젖이 붓는다. 배고픈 천사는 입 안에, 내 입천장에 오롯이 매달린다. 그건 배고픈 천사의 저울이다. 배고픈 천사가 내 눈을 제 안경처럼 덧쓰고, 심장삽은 현기증을 일으키고, 석탄은 흐릿하게 보인다. 배고픈 천사가 내 뺨을 그의 턱 위에 끼워 맞춘다. 그리고 내 숨결을 그네 뛰게 한다. 숨그네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심한 착란 상태이다. pp.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