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 레싱은 200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나이가 88세로 역대 노벨상 수상자 중에서는 최고령이었으며 2013년에 사망하였다. 그는 페미니즘 작가로 알려져있지만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주제로 작품을 써왔다.
<19호실로 가다>는 그의 중단편집으로서 표제작인 <19호실로 가다> 이외에도 10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도리스 레싱이 국내에 어느 정도 알려져 있고 독자층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은 알고 있는 사람이 꽤 있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어느 드라마에서 이 책이 언급된 바가 있었는데 나도 그 드라마를 통해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때 읽은 뒤로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게 되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대체로 1960년대 영국이다. 그 당시에는 유럽에서도 여전히 남녀 차별이 존재했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들보다는 여성들의 내면에 더 집중하고 있으며, 간접적인 차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놓고는 아니지만 은밀하게, 혹은 시대착오적인 등장인물들도 등장하는데 그게 지금 시점에서의 시대착오라 여겨지는 것인지, 아니면 당시에도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럼에도 당시 시대상을 고려해도 상당히 파격적이고 자유분방한 모습도 곳곳에서 보인다. 그러면서도 불안하고, 상실감을 느끼는 모습도 보인다. 그것이 페미니즘의 일환이냐고 묻는다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모호한 답을 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사실 페미니즘이라는 것의 정의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를 페미니즘으로 봐야 할까? 어떤 것을 페미니즘으로 봐야 할까?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러한 페미니즘 소설의 범주에 넣기에는 고전적인 작품이라 최근의 작품들 혹은 다른 페미니즘 고전에 비하면 좀 약하다는 느낌도 든다. 도리스 레싱의 다른 작품들, 특히 대표작들을 읽어보지 못했던 터라 단편집만으로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게다가 단편은 특성상 그러한 주제를 끌고 가기에는 한계가 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제작인 <19호실로 가다>는 중편급의 분량이어서인지 다른 작품들 보다는 좀 더 주인공의 내면을 잘 그려내었고, 더 공감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예나 지금이나 기혼여성들이 아내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확장된 가족의 일원으로서 겪는 것들은 크게 차이가 없다. 아마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나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한 가족 제도하의 개인, 더군다나 배우자의 외도까지 더해진다면 개인으로서 견딜 수 없는 상태까지 갈 수도 있겠다. 그래서 누구나 마음속에 '19호실'을 품고 있지 않을까? 남자거나 여자거나 마찬가지로.
그래서 이 책은 단지 페미니즘 작품으로만 보기보다는 '개인'의 문제로, '자아'의 문제로 봐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