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고독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을 하는 것이 쉬우면서도 어려워졌다. 너무 쉬워서 마치 자신이 어머니와 아내를 사칭하는 사기꾼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껍데기만 이리로 옮겨와 식구들과 함께 움직이며 엄마, 어머니, 수전, 롤링스 부인 이라는 부름에 응답하는 것 같았다. 아무도 자신의 상태를 꿰뚫어보지 못하는 것이 놀라웠다. 가짜라며 쫓아내지 않는 것이 놀라웠다. pp.308/348(전자책기준)
그때 두려움이 살짝 다시 몰려왔다. 그는 그녀에게 정말로 애인이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제발 그렇다고 말해달라고 간청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상황이 너무 무서우니까. pp.310/348(전자책기준)
그녀는 껍데기 밖으로 끌려나왔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고 몸을 움츠리는 달팽이처럼, 이 방이라는 피난처로 다시 움츠리고 들어가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 방에서 느끼던 평화가 이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을 되살리려고 애썼다. 이곳에서 느끼던 그 어둡고 창의적인 황홀경(인지 뭔지 하여튼) 속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애썼다. 소용없는 짓 이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갈망했다. 갑자기 약을 빼앗긴 약물중독자처럼 몸이 아팠다. pp.313/348(전자책기준)
그녀는 여러 번 그 방으로 다시 돌아와 자아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찾은 것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초조감이었다. 어떻게든 움직이고 싶다는 갈망이 열병처럼 그녀를 쿡쿡 쑤셔대고, 자의식이 파르르 성을 내고 일어나면서 마치 뇌 속에서 색색의 불빛들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예전에 이 방에서 느낄 수 있었던 부드러운 어둠 대신, 이제 이 방이 기다리는 것은 증오의 언어를 토해내며 그녀로 하여금 눈 먼 사람처럼 아무렇게나 사방을 들이받게 만드는 그녀의 악마였다. pp.313/348(전자책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