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 레싱의 단편선 <19호실로 가다>는, 정말 <19호실로 가다> 한 편을 읽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사랑해서 결혼을 하고, 사랑하여 아이를 낳아 남편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자신을 잃어가고 있던 여성이 있다. 어느 날 남편이 바람을 피웠음을 고백했다. 아내로서의 그녀의 자리, 사랑받는 여자인 자신의 자리에 다른 여성이 쉽게 왔다가 갔다. 잠시도 혼자 있을 수 없는 일상에 지쳐 고용한 집안을 돌볼 파출부와, 아이들을 돌볼 젊은 보모에 의해 절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엄마의 자리도 쉽게 메꿔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 없이는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던 가정에서 이제는 손님이 되어버린 느낌을 받는 그녀.
거기에 허름한 모텔 19호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그녀를 두고 바람을 핀다 오해하며, 자신의 바람상대와 더블 데이트를 하자고 제안하는 남편을 보면서, 역시 미친 놈들은 늘 새로운 역사를 쓰는구나 싶었다. 아이가 넷이고, 육아와 가정생활에 찌들어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있는 아내가 있어도 젊은 여자와 뜨거운 밤을 보내는 게 중요한 '금발의 미남'인 미친 놈. 개나 고양이만 중성화를 할 게 아니다.
제도적으로 또 다른 수전을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생각해봤지만, 그 어떤 제도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어려울 것 같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인공자궁이 개발되어 남녀 모두 임신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지 않을까. 이 부부는 아이를 넷 낳았으니, 각자 둘씩 낳는 것이 어떨지? 아니면 넷은 너무 많았으니, 둘만 낳는 것은? 일을 그만두는 쪽이 수전이 아니라면 어떨지? 별 생각을 다 해본다.
수전은 그렇게 떠나서 자유를 얻었을까. 삶은 모두에게 고통이기는 하다. 수전은 선택을 했지만, 난 이걸 자살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