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 3.11. 후쿠시마>
2011년 3월11일 오후 2시46분. 일본 미야기 현 동남쪽 130㎞ 떨어진 태평양 해저에서 규모 9.0의 거대 지진이 일어났다. 일본 지진 관측 사상 최대, 19세기 이래의 세계 지진 관측 사상 다섯번째로 큰 규모였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는 강진을 감지한 컴퓨터가 원자로 노심 안에 제어봉을 삽입해 원자로의 가동을 멈췄다. 하지만 지진으로 송전탑이 무너지며 외부 전력이 모두 끊어졌고 냉각장치가 멈추면서 원자로 노심안에서 급격한 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에 즉각 비상용 발전기를 가동하여 냉각장치에 전원을 공급하기 시작했지만 지진 발생 41분 뒤 12m 높이의 '쓰나미'가 방파제를 넘어 해발 10m에 있던 원전을 덮치면서 비상 전원을 공급하던 13대의 발전기 중 12대가 침수됐다. 원전을 식혀주던 냉각장치의 비상 전원마저 '상실’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통제불능의 상황임을 인정하고 원자력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최악의 상황
냉각장치의 불능으로 인해 1호기의 노심용융이 진행되고 수소 폭발이 일어나 원자로 건물 지붕이 날아갔다. 얼마후 3호기에서 훨씬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손상이 심한 2호기의 상황도 매우 심각해져가고 있었다. 원자로 안의 압력이 설계치를 두 배나 웃돌았다. 배기 밸브를 열어 압력을 낮춰야 했는데, 밸브는 열리지 않았다. 후쿠시마의 ‘요시다 마사오’ 발전소장은 ‘최악의 사태가 왔다’고 보고 자신을 포함한 필수인력 50명만 남기고 원전에 있던 작업원 650명에게 원전을 떠나도록 했다. 원전 주변의 방사선량은 급상승했고, 도쿄의 방사선량도 한때 평상시의 20배까지 올라갔다. 이날 2호기 파손사고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유출된 전체 방사능의 90%를 유출시켰지만 마지막 남은 50인의 헌신 덕에 다행히도 2호기의 폭발을 막을 수 있었다.
최후의 50인
남아 있던 50명은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목숨을 내건 인원이다. 이들 `최후의 결사대`는 못쓰게 된 냉각장치를 대신해 바닷물을 끌어올리고 붕소를 쏟아 부으며 원자로를 식히는 작업을 하였다. 바닷물을 투입하면 기체가 발생하여 원자로의 압력이 올라간다. 폭발을 막기 위해서 방사성 물질이 포함돼 있는 기체를 빼주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이들 50명이 모두 피폭을 막는 방호구를 착용하고 있지만 15분 이상 노출되면 안되었다. 정상인에게 1년 동안 허용되는 양의 400배에 달하는 방사선 앞에서 장시간 작업을 하였다. 일본 당국은 최후까지 남은 직원 50명의 신원과 작업 기간 등에 대해 당시에는 전혀 밝히지 않았다. 그저 이들이 자원해 최후 잔류자로 선발됐으며 원전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작업을 한다고만 밝혔다.
'요시다 마사오'
당시 사고 발생 직후 현장에 있던 도쿄전력의 평사원들과 하급관리자들의 행동은 영웅적이었다 ‘요시다 마사오’ 소장은 도쿄전력 본사에서 내려온 원전 포기 명령을 무시하고 바닷물 주입을 계속하여 사태의 확산을 막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후쿠시마의 상황이 대재앙까지 가지 않은 것은 이들이 끔찍한 희생을 감수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당시 막대한 해수의 주입이 없었더라면 틀림없이 원자로의 노심까지 폭발하고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후 요시다는 도쿄전력으로부터 명령불복종으로 공식 처벌을 받았고 사고 후 2년뒤 식도암으로 사망했다.
일본의 명과 암
후쿠시마 사고는 인류에게 원전 사고의 위험성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자 일본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국가적 재난속에서도 의연함과 질서를 지키는 일본국민들의 초인적인 희생정신과 인내심의 위대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도쿄전력의 임원들을 포함한 일본 최고 엘리트 지배층인 기업 관료 정치집단이 얼마나 무능하고 무책임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들은 후쿠시마 원전의 취약성과 사고 발생의 가능성에 대한 수많은 대내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국가 전력시스템>이라는 거대한 기득권 카르텔과 이해관계로 결속하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현실을 외면해 왔다. 사고 발생이후에는 사고 수습보다는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하려 하였다. 오히려 이 위기를 핑계로 당시 정치개혁을 추진하던 일본 민주당 정권은 실각했으며 우익 정치세력은 보수화 되었고 지배층 기득권은 더욱 공고화되었다.
반성없는 지배관료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위대한 국민과 무책임한 관료제 집단'으로 대변되는 일본 국가 체제의 고질적인 문제는 나아지지 않은 듯하다. 일본국민과 주변국가 그리고 지구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무시한 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 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독단적인 결정이 그렇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일본 국민들의 거센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 정부의 고위 관리는 주변국의 우려에 대해 "중국과 한국 따위에게는 항의를 듣고 싶지 않다"며 "분개했다"고 한다. 일본의 정책 결정권자들은 그들의 무책임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는 자국민과 주변국 그리고 지구적 차원의 환경피해에 대한 책임감과 윤리의식이 결여 되어 있는 것 같다. 일본의 지배층은 2011년 3월 끔찍했던 후쿠시마의 교훈으로 부터 배운것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