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을 선고받자 안중근은 바빠졌다. 집행되기 전에 마무리 지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안중근은 선고를 받기 전부터 자신의 일대기인 『안응칠역사』를 쓰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덕순을 만나는 대목까지 썼고, 그날부터 이토를 죽이고 사형선 고를 받을 때까지 사 개월이 미완으로 남아 있었다. 2월 14일에 사형선고를 받고 2월 17일부터 『동양평화론』을 쓰기 시작했는데 탈고까지는 한 달 남짓 걸릴 듯싶었다. 그동안의 신문과 재판 과정에서 말로 대꾸했던 내용들을 틀을 갖추어서 글로 쓸 작정이었다. pp.252
먹물을 찍어서 획을 그을 때는 방아쇠를 당겨서 총알을 내보낼 때처럼 몸의 힘이 종이 위로 뻗쳐나갔다. 안중근은 글씨 쓰기가 쑥스러웠지만 불편하지는 않았다. 돌이켜보면, 우덕순과 만나 이토를 쏠 때까지 며칠 동안 많은 실수와 불비가 있었다. 그것들이 하나라도 뒤틀렸다면 사업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어쩌자고 그렇게 허술했는지, 생각하면 진땀나고 숨막혔다. 잡히고 나니 돌아다닐 일이 없어서 남은 일들 을 차분하게 정리해나갈 수 있었는데, 시간은 너무 촉박했다. pp.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