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은 자신에게 영세를 베푼 사제를 향해서 '국가 앞에서는 종교도 없다'는 황잡한 말을 하고 교회 밖으로 나가서 이토를 죽였는데, 황사영은 서양 군함을 몰고 와서 국가를 징벌해달라고 북경의 주교에게 빌고 있었다. 두 젊은이는 양극단에서 마주 서서, 각자의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었다. 황사영은 국가를 제거하려다가 죽임을 당했고 안중근은 국가를 회복하려고 남을 죽이고 저도 죽게 되었는데, 뮈텔은 이 젊은이들의 운명을 가로막고 있는 '국가'를 가엾이 여겼다. 황사영에서 안중근에 이르는 백 년 동안 두 젊은이의 국가는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갔다. pp.251
사형을 선고받자 안중근은 바빠졌다. 집행되기 전에 마무리 지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안중근은 선고를 받기 전부터 자신의 일대기인 『안응칠역사』를 쓰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덕순을 만나는 대목까지 썼고, 그날부터 이토를 죽이고 사형선 고를 받을 때까지 사 개월이 미완으로 남아 있었다. 2월 14일에 사형선고를 받고 2월 17일부터 『동양평화론』을 쓰기 시작했는데 탈고까지는 한 달 남짓 걸릴 듯싶었다. 그동안의 신문과 재판 과정에서 말로 대꾸했던 내용들을 틀을 갖추어서 글로 쓸 작정이었다. pp.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