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덕순은 이토를 죽이러 가자는 안중근의 제안에 즉석에서 동의하고 이틀 뒤 둘이서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났다. 이토를 죽여야 하는 이유를 둘이서 말하지도 않았다. 둘 사이에 정치적 대화는 없었다. 이 과정은 우덕순의 진술과 안중근의 진술이 일치했다. 이 두 사내들 사이에 어떤 신통력이 작동해서 이런 행동이 가능했던 것인지 미조부치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이 두 사람만의 일인가, 아니면 다른 조선인들에게까지 확산될 수 있는 일인가를 미조부치는 우덕순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이 난감한 질문은 사건의 핵심일 수도 있지만 법률가가 대답할 사안은 아닐 것이라고 미조부치는 스스로 대답했다. 우덕순에게서 사상적 동기를 박탈하고 우덕순을 안중근의 사주를 받은 하수인으로 규정해서 기소하기로 미조부치는 가닥을 잡았다. pp.212
안중근에 대한 신문은 처음부터 혼란스러웠다. 안중근은 사실 관계를 분명히 진술했지만, 미조부치는 안중근의 진술에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정치적 신념이 작동하고 있음을 초장부터 알았다. 안중근의 정치성을 부재하는 것으로 몰고 나갈 수는 없 었고, 그 정치성이 이토의 문명개화주의와 동양평화 구상에 대한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몽매의 소산이라는 것을 신문을 통 해 드러내기는 쉽지 않았다. pp.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