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은 발칵 뒤집혀 있었다. 이토는 현장에서 절명했고 이 토를 쏜 범인은 한국인 안응칠, 나이는 서른한 살, 직업은 사냥 꾼이라고 신문들은 보도했다. 정대호가 청나라 신문을 사와서 김아려에게 읽어주었다. 잠든 아이들의 옆에서 두 무릎을 안고 앉아서 김아려는 정대호가 전하는 소식을 들었다. 김아려는 받 아들여야 할 거대한 운명을 느꼈다. 안중근이 이 년 전에 블라디 보스토크로 떠날 때부터 모든 일은 이렇게 되도록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이토가 죽었으니까... 저이도 곧 죽겠구나... 198-199
안중근이 무슨 생각으로 처자식들을 하얼빈으로 불렀는지 정대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대호는 안중근의 처자식을 데리러 평양에 갔다가 며칠을 주색잡기로 소일하고 10월 23일에야 평양을 떠났는데, 안중근이 총을 쏘기 전에 처자식들을 데려와 서 만나게 해주었다면 안중근이 총을 쏠 수 있었을까를 정대호는 생각했다. 안중근을 위해서나 그의 처자식을 위해서나, 총을
쏜 후에 그의 처자식들이 하얼빈에 도착해서 안중근이 총을 쏘기 전에 처자식과 만날 수 없었던 것은 잘된 일이지 싶었다. 돌 이킬 수 없는 일은 끝내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정대호는 마음이 편해졌다. pp.199
김아려의 마음속에서 남편은 죽었다. 죽음은 바뀔 수 없었다. 미조부치는 김아려가 안중근의 아내라는 심증을 굳히고 신문을 끝냈다. pp.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