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를 죽인 범인은 한국인 청년 안중근이고, 안중근은 십이 년 전에 황해도 산골 마을에서 빌렘 신부에게 영세 받은 천주교 인이라는 사실은 며칠 안에 세상에 알려졌다. 한국 황실은 불령한 신민 한 명이 잘못 태어나서 저지른 죄업을 일본 황실에 거듭 사죄했다. 뮈텔은 이 황급한 사죄에서 사건의 배후로 의심받지 않으려는 한국 황실의 두려움을 읽었다. pp.178
뮈텔은 안중근의 내면의 영성을 헤아릴 수 없었다. 안중근은 조선의 자식이고 조선의 폐허에 발 디디고 있지만 폐허에 속하 지는 않았다. 안중근은 길라잡이로서 믿음직했지만 뮈텔은 안중근에게서 위태로운 어긋남을 느꼈다. pp.181
뮈텔이 말했다.
-조선에 대학교는 가당치 않다. 조선인은 우선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조선인이 학문을 배우면 신심을 해치게 된다. 좋
지 않다. 다시는 이런 말을 꺼내지 마라.
안중근은 뭐라고 더 할 말을 참는 듯하다가 돌아갔다. pp.184
범인이 안중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뮈텔은 황해도 산골에서 길을 안내하던 안중근과 대학교를 세워달라고 들이대던 안중근을 떠올렸다. 이토가 죽은 뒤에 안중근이 천주교인인가를 묻는기자들의 질문에 뮈텔은 안중근은 이미 천주교인이 아니라고 대 답했다. pp.184-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