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총은 느낌으로 쏘는 것이 아니다. 표적을 겨눠서 조준선 위 에 올려놓기가 어렵다. pp.155
총구를 고정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총을 쥔 자가 살 아 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렸다. 가늠쇠 너머에 표적은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표적으로 시력을 집중할수록 표적은 희미해졌다. 표적에 닿지 못하는 한줄기 시선이 가늠쇠 너머에 서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보이는 조준선과 보이지 않는 표적 사이에서 총구는 늘 흔들렸고,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는 방 아쇠를 거머쥐고 머뭇거렸다. 방아쇠를 당기고 나면 실탄이 총구를 떠나는 순간 조준선은 지워졌고 총의 반동이 손바닥과 어깨에 걸렸다. 비틀린 조준을 다시 회복하고 나면 표적은 다시 안개 속에 묻혔다. pp.159
방아쇠를 당길 때,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는 몸의 일부가 아니라 홀로 독립된 생명체였다. 둘째 마디는 언제 당겼는지 도 알 수 없는 적막 속에서 스스로 직후방으로 작동해서 총알을 내보냈다. 그러므로 이토를 조준해서 쏠 때 이토를 죽여야 한다는 절망감과 복받침, 그리고 표적 너머에서 어른거리는 전쟁과 침탈과 학살과 기만의 그림자까지도 끊어버리고 둘째 마디의 적막과 평온을 허용해야 할 것이었다. pp.159-160
안중근은 벽의 한 점을 겨냥하면서 빈총의 방아쇠를 당겼다.검지손가락 둘째 마디는 고요해서 손가락이 손가락의 움직임을 알지 못했다. 25일 밤에 안중근은 깊이 잠들었다. pp.160-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