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이 하숙방으로 찾아와서 술을 사주면서 이토가 하얼빈에 온다는 말을 했을 때 우덕순은 안중근이 왜 왔는지를 대번에 알았다. 안중근은 우덕순에게 동행할 것인지를 대놓고 물어보지 않았고, 우덕순도 같이 가자고 대놓고 말하지 않았다. 안중근이 이토의 만주 방문을 알리는 신문을 보여주었을 때, 우덕순은 안중근과 함께 가기로 되어 있는 운명을 느꼈다. 자신의 생애는 이 불가해한 운명의 예감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고 우덕순은 생각했다. 그 예감은 이토를 쏘아야 한다는 뚜렷하고 밝은 목표로 귀결되고 있었다. 이토를 쏘면 이토는 그 사격의 결과로 죽게 될 것이었고, 총알이 급소를 치지 못해서 이토가 죽지는 않더라도 총을 쏜 이유를 말할 자리는 마련될 것이었는데, 우덕순은 총알이 급소에 정확히 박히기를 원했다.
그날, 우덕순과 술집에서 마주앉았을 때 안중근은 우덕순을 찾아온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음을 저절로 알았다. pp.112-113
-꿩을 쏘고 남은 총알로 이토를 쏘는구나.
우덕순이 소리 없이 웃었다. 웃음은 엷게 얼굴에 번졌다.
-우습지만 그렇게 되었다. 겨누어 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총을 많이 쏘아보았는가?
-많이 쏘지는 않았다. 나는 사냥꾼이 아니지만 이토는 꿩보다 덩치가 크니까 어렵지 않을 것이다. pp.115
너는 참으로 총을 아는 자로구나...라는 말을 안중근은 참 았다.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지만 총은 한번 쏘면 돌이 키지 못한다. pp.116
너는 일을 할 줄 아는 자로구나. 그러나 달아나지 않는 것보다 세 발 안에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준선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라는 말을 안중근은 또 참았다. pp.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