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지도 몰랐던 아파트 문을 처음 열었을 때, 나는 눈에 들어오는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책으로 뒤덮인 책, 아버지가 시장에서 찾아낸 게 분명한 빛바랜 러그, 오페라 음반, 선반에 놓인 싸구려 장식품, 여행 기념품, 찬장 속의 양철 차통과 알록달록한 접시, 보면대에 바흐의 곡이 아직도 펼쳐져 있는 낡은 업라이트피아노. 심지어 부엌에서 나는 향신료 냄새까지. 이곳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아버지의 집이었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모든 물건이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철저함 때문에 나는 더욱 놀랐고 당황했다. 아버지의 삶을 거꾸로 뒤집어 보는 느낌이었다. 여기가 그의 진짜 집이고 내가 어릴 때부터 살아온 아파트는 여기를 떠나 있을 때 머무른 곳에 불과하다는 느낌. 아버지의 거실 한가운데에 서서 나는 날카롭게 파고드는 배신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