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를 어떻게 해서든지 눌러야 한다는 생각이 언제부터 마음에 자리잡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확실하지 않았으나 분명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골병처럼 몸 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멀리서 다가와서 넓게 퍼진 골병처럼 그것은 몸속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집어서 드러내 보일 수는 없었다. pp.88
도주막의 어둠 속에서 잠을 청하는 밤에, 안중근은 이토의 육신에 목숨이 붙어서 작동하고 있는 사태를 견딜 수 없어하는 자 신의 마음이 견디기 힘들었다. 이토의 목숨을 죽여서 없앤다 보다는, 이토가 살아서 이 세상을 휘젓고 돌아다니지 않도록 이 토의 존재를 소거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바라고 안중근은 생각했다.
그렇다기보다도, 이토가 애초에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이토의 한 생애의 자취를 모두 소급해서 무화시키는 쪽이지 싶기도 했는데, 그 지우기가 결국 이토의 목숨을 제거하 는 일이 되는 것인지는 생각하기가 머뭇거려졌다. 이토의 목숨을 제거하지 않고서, 그것이 세상을 헝클어뜨리는 작동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니, 그렇기 때문에, 이토를 죽여야 한다면 그 죽임의 목적은 살에 있지 않고, 이토의 작동을 멈추게 하려는 까닭을 말하 려는 것에 있는데, 살하지 않고 말을 한다면 세상은 말에 귀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세상에 들리게 말을 하려면 살하고 나서 말 하는 수밖에 없을 터인데, 말은 혼자서 주절거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고 알아들으라고 하는 것일진대, 그렇게 살하고 나서 말했다 해서 말하려는 바가 이토의 세상에 들릴 것인지는 알기가 어려웠다.
이 세상에서 이토를 지우고 이토의 작동을 멈춰서 세상을 이 토로부터 풀어놓으려면 이토를 살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를 안중근은 어둠 속에서 생각했다. 생각은 어둠의 벽에 부딪혀서 주저 앉았다. 생각은 뿌연 덩어리로 엉켜 있었다. pp.8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