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솜씨다. 짐승을 쏘기에는 아깝구나.
안태건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술자리에 모인 사내들에게 그 말은 이 세상을 향해서 하는 말처럼 들렸다. pp.55
사내들의 말은 가깝고 다급했지만, 말 끝난 자리의 허허로움을 다들 알고 있었다. 안중근은 몸속에서 들끓는 말을 느꼈다. 말은 취기와 뒤섞여 아우성쳤다. 안중근은 말하지 않고 술을 마셨다. pp.59
한동안 안중근의 조준선은 흔들렸다. 먼 짐승을 겨누면 표적 너머에 무언가 흔들려서 맞힐 수 없는 것들이 어른거렸다. 표적 은 조준선 너머의 안개 속으로 녹아들어간 듯싶었다. 오른손 검지가 방아쇠를 당길 때 총구가 오른쪽으로 쏠리면 총알은 빗나 갔다. 가늠쇠가 움직일 때 안중근은 실패를 예감했다. 짐승이 달아난 자리가 휑했고, 총구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골짜기를 울린 총소리가 잦아들고 나면, 표적을 맞히지 못한 총의 무게가 허허로웠다. pp.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