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자기가 누구인지 잘못 알고 있다가 그 착각이 깨지는 것, 그게 성장이라고 하던데". 그럼에도 어떤 착각은 때로 너무나 큰 간절함에 잔뜩 납작해진 염원의 모양일 것이다. 그 착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가장 깊은 소망과 닮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네가 너무 빨리 큰 애가 되는 게 싫었던 거야ㅡ책에 다른 좋은 구절도 많지만 이 부분이 왜 그렇게 가슴 저렸는지. 로자는 모모가 어른이 될 것이 두려워 아이의 나이를 속였다고 고백했지만 내겐 이 부분이 비단 불안감으로만 읽히진 않았다. 로자의 거짓말은 어쩔 수 없이 너무나 빠르게 조숙해지는 모모를 위한 그 나름의 보호막처럼 기능했을 것이다. 자신을 가족의 전부로 생각하고 의지하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아이로 머물러 있었으면 하는 그 간절함. 초라하고 지난하게 늘어진 삶의 테이프를 남보다 배로 빠르게 감아가야 했던 어린 영혼을 향한 애틋함.
로자는 없지만 모모 앞의 생에는 언제나 아르튀르가 함께할 것이다. 그리고 아르튀르가 우산이라는 점이 나를 여러 모로 기쁘게 한다. 볕이 드는 날이면 함께 춤을 추고 비가 오는 날이면 아르튀르와 한 몸이 되어, 세계가 다시금 부서져 내리더라도 그 파편을 받아내고 튕겨내며 살아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