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와 ‘영주’는 아직도 내 노트 위에 있다.
그때의 기록을 읽어나가면 우리가 나눴던 웃음과 이야기들, 밤의 풍경과 밤공기에 섞인 보리수꽃 향기까지 느낄 수 있다. 내게 웃어주던 한지의 얼굴, 한지가 매점에서 산 밑창이 얇은 슬리퍼, 우리가 나눠 마시던 콜라와 다리 하나가 약해서 자꾸 뒤로 넘어가던 간이 벤치 모두 생생하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들은 모두 없었던 일처럼 빛을 잃는다. 한지와 보낸 시간의 세부를 낱낱이 기억하면서도 실감은 점점 흐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