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혁은 언젠가부터 조용히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술 마시고 새벽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야, 나 오늘 죽고 싶어!' 소리 지르는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욕조에 물이 조금씩 차오르는 것처럼, 수혁은 죽음에 대해 조금씩 진지하게 생각했다. 계속해서 살아 갈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인생의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지고, 더는 견디기 어려울 때 세상을 떠나는 것 같기도 했다. 마치 욕조의 물이 넘치는 순간 같은 때에 말이다. pp.172
주변의 모든 게 정지한 느낌이었다. 수혁은 기쁨과 슬픔을 한꺼번에 느꼈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답고 찰랑거리는 햇살로 가득 차 있었던가. 슬픔은 애틋한 종류의 어떤 것이었다. 앞으로 추억으로만 기억해야 하는 어머니와의 가을이 과거의 시간 속에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pp.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