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다 의지할 데가 없는 처지여서 날마다 붙어다녔어요. 그러다보니 기대하게 되고 그만큼이나 실망하게 된 것 같아요. 아무리 애를 써도 마지막에 왜 그렇게 싸웠는지 기억이 잘 안 나요. 작은 싸움들이 쌓여서 그렇게 된 것 같기는 한데, 왜 기억나지도 않을 일로 그녀를 그렇게 몰아세웠는지 모르겠어요. pp.203/314 (전자책기준)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 나는 나보다 약한 누군가를 도와주는 내 모습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말로는 친구라고 하면서도 내가 미진보다 더 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너는 나 없이 아무것도 못해, 라고. 미진이 점점 더 러시아 말을 잘하게 될수록, 저의 도움이 필요 없어질수록, 매력적인 친구들과 어울릴수록 미진에게 화가 났습니다. 미진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넌 아무것도 아니야. 넌 아무것도 아니야. 그게 날 견딜 수 없게 하더군요. 이타심인 줄 알았던 마음이 결국은 이기심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건 미진이 떠난 이후였습니다. pp.205/314 (전자책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