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테루오가 말했어요. 설탕을 따로 모아뒀다고, 어디 먼 데 가서 같이 살자고. 그땐 설탕이 아주 귀했거든. 신의주에서 만주로 넘어가려면 설탕 한 묶음이 필요했지. 그러니 테루오가 내게 청혼을 한 셈인데, 반지 대신 설탕으로 한 거지요." pp.164
"몰라도 괜찮아요. 모르는 게 당연하지요. 나 같은 사람이야 늘 이쪽을 보며 살았으니까. 천 번을 와도 천 번을 새롭게 실망하는 기분. 그걸 더는 안 느끼고 싶은 거예요. 난 알고 싶어요. 죽기 전 에 확인하고 싶어."
"설탕을요?"
내가 물었다.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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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없다면, 벽을 뚫어보았는데 없다면......"
더 슬프지 않을까요. 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고 나는 할머니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상관없어요. 나는 이미 그 설탕으로 충분하게 달콤했어" 할머니가 말했다. 그러고는 몸을 일으켜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서 힘을 주었다.
"하지만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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