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자신이 한 말의 진실을 담보해줄 어떠한 물건도 내게 보여주지 않았다. 오직 말로만 그 시절의 기억을 전했다. 말이면 나는 충분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궁합이란 것이 있다면 서로가 하는 말에도 궁합이 있지 않을까. 희래와 메일을 주고받을 때 그랬던 것처럼 나는 할머니와 말이 통한다고 느꼈다. 할머니가 작은 어깨를 펴며 "사랑에 빠지면 자기 신분을 깨닫게 되지요"라고 말 한다든가,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나보다 어떻게 그 사랑을 지켜갔느냐가 더 중요합니다"라고 말할 때 나는 나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할머니와 내가 같은 역의 선로에서 갈라져 나온 레일 같다고 느꼈다. pp.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