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래의 편지는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진정제보다 나를 더 안정시켰다. 나는 희래가 털어놓는 어두운 감정이 좋았고, 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이불을 만들어 얼굴에 덮고 자고 싶었다. pp.149
무엇보다 우리는 현실에서 마주하기엔 지나치게 많은 말을 숨김없이 했다. 빛이 강한 여름에 오히려 태양광 에너지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너무 많은 비밀을 나누었기에 연인이 될 수 없었다. 연인이 되고 싶단 생각조차 나만의 바람이었다. 희래는 다른 사람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저 언제까지나 희래의 얘길 들어주고 싶었다. 평생, 희래가 자신의 멍들고 다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였으면 했다. pp.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