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토마토소스와 부풀어오르는 치즈 향을 맡으며 나처럼 버려질 책들을 건너다 보았다. 두 여자에게 버려질 예정이니 틀림없이 고귀한 것이리라. 두 여자에게 외면당했으니 세상의 진리와 아름다움을 담고 있으리라. pp.125
글도 못 읽는 내가 어떻게 심오한 철학과 미학을 이해할 수 있느냐고 의심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내가 책을 읽게 될 줄 몰랐다.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서야 자신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나르키소스 같달까. 기나긴 번데기의 시간을 지나 화려한 무늬의 날개가 돋아난 나비와 같달까. 나는 버려진 책들을 본 순간 숨겨진 내 재능을 깨달았다. 책갈피, 내 오래된 이름이 찾아와 몸과 의식을 일깨웠다. pp.125
나는 인류 지성사에 깃든 나의 위대함을 확인하며 두 여자가 내린 쓸모없다는 판단이 얼마나 반인륜적이고 반지성적인지 깨달았다. 쓸모없음이야말로 인류가 지켜가야 할 빛나는 보석이었다. pp.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