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여진을 품고도 우리는 위아래 구분 없이, 중간 층계참에 앉아 서로의 온기를 나눌 수 있을까? <여진>은 같은 비극을 공유한 이들이 서로 다른 상처를 품은 채 미끄러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공허한 응원, 그들의 비현실적인 자해, 트램펄린 위에서만 터뜨릴 수 있는 누나의 고성, 그리고 그 모든 걸 겪고도 말할 수 없는 소년의 침묵. 같은 이유로 아프지만 각자의 아픔을 내보일 수 없는 이들은 응원의 말에 숨긴 강요를, 질문하지 않는 배려로 감춘 황망함을 주고받을 뿐이다. 그렇지만 함께 살 수 없다던 누나와 소년이 함께 살고, 늙은 개에게 금지어로 이름을 붙이며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려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여진 안에서 함께 공명할 수 있음을, 계속 미끄러지더라도 중요한 건 서로를 위해 한 번 더 미끄러지는 것임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