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키스 장면을 그렸다기보다 함께 녹아 섞이는 두 사람의 몸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여느 키스들과 다르게, 둘이 섞이며 하나가 되는 결합의 순간이었다. 또다른 면에서 그 그림은 매우 음침했고, 두 몸의 자세가 극심한 고통을 겪는 듯 보여서, 뭔가 멈출 수 없는 고통을 목격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뭘 표현한 것이든, 그 그림은 완벽하게 서로에게 흡수되어 따로 떨어져나오기를 포기한 두 사람을 보여주고 있었다. (p.203)
나는 <뱀파이어>라는 그림 앞에 한참 서 있었다. 이것도 일종의 키스이자 두 사람의 몸이 섞이는 그림이다. 하지만 이 그림이 그려낸 것은 위안일까, 아니면 목을 물어 목숨을 위협하는 장면일까? 여자의 붉은 머리칼은 남자를 망각과 용서로 감싸는 것일까, 아니면 실제로 피가 흘러내리는 장면일까? 어쨌거나 이 그림에서도 <키스>에서처럼 얼굴 없는 두 사람과, 맹목적이고 고통스러운 공생이 보인다. (p.203-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