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도 배신도 겪지 않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게 내 행복의 비결이라고 믿었었는데. 사실 나는 후회하는 것도, 걱정하는 것도 두려워 생각을 멈춰버린 소금 기둥 같은 존재에 불과한지도 몰랐다. pp.257
내 모든 것들이 또 한번 어그러지고 변해버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끝끝내 순간의 감정조차 긍정하지 못한 채 그저 가만히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버리기를 바랄 뿐이었다. (...) 소복이 쌓인 눈을 밟으며 이태원 사거리에서 집까지 걸어왔을 땐 운동화가 딱딱하게 얼어 있었다. 조금 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게 나였다. pp.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