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슬픔을 삼킬 때마다 빠르게 늙어가는 동화 속 남자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남자가 슬픔을 집어삼킨 이유가 슬픔에 짓눌린 사람을 돕고는 싶은데,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무작정 삼켜버린 게 아닐까 추측하는 소년에게 누나는 설마 그 정도로 멍청한 이유겠어?라고 묻지만 누구나 슬픔 앞에서는 멍청해질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때로 슬픔은 아주 강한 힘으로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기 때문에 타인과 나눌 수도, 스스로 해결할 수도 없는 채로 그저 삼켜버리는 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전부일 때가 있으니까요. 삼켜버린 슬픔은 소화되지 않고 신체의 일부로 남아 슬픔에 잠긴 채로 삶을 지속하게 만듭니다. 잊지도 못하도록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잘각잘각 챙강챙강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무언가를 잊고자 하면 오히려 계속 그것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처럼 뛰면 안 돼. 뛰면 안 돼. 그 말속에서 영원히 뛰는 남매의 슬픔과 끊임없이 살 자격을 스스로 심문해야 했을 소년의 슬픔이 아주 가슴 아프게 와닿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