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슬픔을 자기몸으로 옮겨담는 남자.
그도 알터다. 사람들에게는 슬픔을 견뎌낼수 있는 힘이 있다는것. 슬픔에 지지 않을 만큼의 힘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자신의 몸에 옮겨담지 않고는 속죄할 방법을 모르는 남자는 계속 그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만이 자신이 할수 있는 전부일테니까.
다른 방법을 모를테니까.
가족을 잃은 슬픔을 알기도 전에 '그 애들'이라며
가족을 죽게 만든듯한 시선과 속닥거림들에 자신들을 원망하는 것이 쉬웠던 남매.
고모는 자신의 감정에 몰입되어 남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
'웃는구나'
웃는것이 죄악이 된 아이들은 그 무엇에도 자유로울수 없다. 아니, 자유로워지면 안되는 것이다. 그런 일을 벌어지게 한 아이들이니까.
그럼에도 부모는 말해준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반드시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우린 얼마든지 기다랴 줄수 있단다'
자녀의 슬픔을 자신들의 몸속에 옮겨담지 않고 스스로가 견뎌낼수 있도록 기다린다.
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자녀가 내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목격한다면 무게가 얼마든 어서빨리 제 몸에 옮기고 싶은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얼른 옮겨담고 싶은 부모는 그 마음을 견디고 자녀의 몫이라 인정하고 겪어내도록 버텨주는 일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남매의 부모는 버틴다.
그 버팀속에서 남매는 냄새나는 곳을 드러내고 스스로가 나쁜애들이라며 고통을 드러낸다.
고통을 고통으로 느낀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할수만 있다면 뒤도안돌아보고 도망치고 싶은 것이 본능이다. 남매는 마주한다. 직면한다. 도망치지 않고 고통스럽다고 냄새난다고 드러낸다.
드러낸다는 것은 자기가 갖고 있는 힘이 있음을 믿는 일이다.
타인의 감정을 내 것으로 집어삼키지 말고
냄새나고 더러운 것을 버텨내주는 것.
한 발짝 떨어져 미더워해주는것.
그것이 사랑하는 타인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