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헛것을 본 게 아니다. 선들은 평행이 아니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건물이, 그러니까 그가 사는 아파트가... 기울어 있어서 옆면 선들이 평행에서 벗어났다. 1도에서 2도에 불과했지만, 바로 옆 건물과의 옆면이 두 개의 I자가 아니라 아주 길고 위아래가 뒤집힌 V자 모양을 하고 있었다. (p.121)
각도가 커진 것이 아니었다. 각도의 모양이 달라져 있었다. 두 건물의 측면이 이루는 모습은 뒤집어놓은 V자가 아니라 길게 늘인 D나 활 모양이었는데, 그가 사는 아파트가 휜 활짱이라면 옆 건물이 똑바로 선 시위처럼 보였다. (p.132)
뱀이 아니었다. 거실을 뒤지고 있는, 순 근육으로 이루어진 저 검은 밧줄은 그저 더 큰 존재에서 뻗어나온 덩굴에 불과했다. 훨씬 더 큰 존재. 너무 커서 아파트 한 동 전체를 어린나무처럼 구부릴 수 있는 존재. (p.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