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9 감사한다는 것은 결코 내가 믿는 미덕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어린아이에게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일로 보였다. 그래서 내가 막스 데미안에게 전혀 감사해하지 않았다는 것이 지금도 별로 놀랍지 않다. 데미안이 나를 크로머 의 손아귀에서 구해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 병들고 상했을지도 모른다고 지금도 나는 확신한다. 당시에도 이 구원을 나는 내 짧은 인생의 가장 큰 경험으로 느꼈다. 그러나 구원해 준 사람을, 그가 기적을 완수하자, 나는 곧 제쳐 두었다.
감사해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말했듯, 내게는 이상하지 않았다. 내게 특이하게 느껴진 것은 오로지 내가 보인 호기심의 결핍이었다. 나를 데미안과 접촉하게 했던 비밀들에 좀더 가까이 가지 않은 채 어떻게 단 하루라도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카인에 대하여, 크로머에 대하여, 독심술에 대하여 좀더 들으려는 욕망을 나는 어떻게 억제할 수 있었을까?
거의 이해가 안 되지만 일이 실제로 그랬다. 내가 갑자기 악령이 씌운 그물로부터 풀려났음을 나는 보았다. 다시 세계가 밝고 기쁘게 내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두려움의 발작과 목을 죄는 심장의 격한 고동에 시달리지 않았다. 저주의 주문은 풀렸다. 나는 더 이상 괴롭힘 당하는 저주받은 자가 아니었다. 나는 다시 평소와 같은 학생이었다. 내 본성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균형과 안정에 이르려 했다. 그렇게 본성은 무엇보다 그 많은 추하고 위협적인 것을 떨쳐버리려고,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