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화면에 내 얼굴이 비쳤다. 미간이 잔뜩 구겨지고 신경질적인 표정이었다. 그 옛날 배서정이 자주 지었던 표정과 닮아 있는 얼굴. 나는 화들짝 놀라 버릇처럼 얼른 손가락으로 주름을 꾹꾹 눌러 폈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아직도 배서정과 매거진 C의 영 향권 안에 있음을 깨닫고는 했다. pp.61
서른한 살, 벌써 네번째 신입 사원이 된 나는 스물세 살에 잡지사에 들어와 내 나이 무렵에 이미 팔 년 차 직장인이었던 배서정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나도 모르는 새 내 삶에 옮겨붙은 어떤 안간힘의 궤적을 말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배서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만큼 배서정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나와 황은채를, 요즘 애들이라고 이름 붙여진 불가해의 영역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을. 어떤 종류의 이해는 실패하고 나서야 비로소 삶의 자세로 남기도 한다. 내게는 그 시절이 그랬다. pp.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