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제작 <어쩌면 스무번>은 건강상의 문제로 시골로 이주한 부부의 이야기다. 너른 시골에 홀로 서 있는 이 주택에서 그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돼 버렸다. 보안업체라고 사람이 찾아와서 계약을 하지 않으려는 부부에게 끊임없이 공포를 심어준다.
방문 판매라는 것이 이토록 폭력적일 줄 상상도 못했다. 도살장 안의 소처럼 부부를 가두고 계속해서 공포를 심는다. 생각해보니 현재 우리의 소비심리랑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소름끼쳐!
마지막 소설 <미래의 끝> 에서도 방문판매 아줌마가 나온다. 이 아줌마는 보험아줌마인데 <어쩌면 스무번>에 나온 방판과는 사뭇 다르다. 옛날에는 방판 아줌마가 참 많이 왔었다. 나도 학교 다녀오면 우리집에 아줌마들이 둘셋씩 누워서 화장품 마사지를 받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다보면 서로 밥도 해먹고, 세상사는 이야기도 하고, 계도 붓고. 문제가 생긴 적도 있겠지만 그 땐 다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미래의 끝>에 나오는 '나'의 집은 가난하고, 너무 가난하다. 아이는 아이대로 방치돼서 깊은 외로움을 느끼고, 엄마는 엄마대로 가난과 고군분투한다. 열심히 살려고 했으나 다가오는 사고에는 속수무책이라 결국 보험을 해약하지만 보험아줌마는 그래도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는다. 방구석에 쳐박혀 수음에 눈을 뜬 열살짜리 남의 아이를 데리고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남의 아이를 엄마 허락도 없이 데리고 나간다는 것이 거의 유괴에 가까운 일이겠지만!!
소설 속의 '나'는 아줌마에게 매우 고마움을 느끼고, 아줌마가 아주 좋은 직업을 가진 줄 알았다가 그 비애를 일정부분 경험하면서 동질감을 느낀다.
어쩌면 가족보다 타인이 서로를 이해하기 쉽나보다.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더 많이 실망하고, 상처가 났을 때 더 자주 덧난다. 그러나 남은 작은 호의에도 따뜻한 정을 느낀다. <미래의 끝>에서 '나'는 보험아줌마의 손에 이끌려 나간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엄마가 사고를 당한 아저씨 병문안에 갈 때 따라나서며 몰랐던 부모의 비참함을 마주한다. 자기는 막일을 할지언정 아이만큼은 바르게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 하지만 아이는 엄마가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데! 그렇게 가족의 시간은 이상하게 흘러가버린다.
<호텔 창문>과 <좋은 날이 되었네> , <후견>은 이상한 가족애를 엿보게 한다. 이 세가지 소설에는 특수한 가족적 상황이 연출된다. <호텔 창문> 에서는 주인공 '나'가 어린시절 큰집에 맡겨지고, 사촌 형을 따라 물놀이를 갔다가 형이 물에 빠진 '나'를 구하고 죽기 때문에 그 죄책감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냥 짊어지는 게 아니라 백부와 백모의 강압에 의해 형의 삶을 대신 살아간다. 큰어머니는 심지어 형의 이름으로 '나'를 부르기도 한다. 형의 제사에 못가면 회사에 찾아와서 망신을 준다. 이럴수가. 삶도 죽음도 선택한바 없거늘! 형이 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보이고 둔갑해 살아가지만 형도 외박의 정당성을 위해서 동생을 데려간 것일 뿐, 비행을 일삼다 동생을 잘 돌보지 못해서 아이가 물에 빠진 것이다. '나'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데도 그저 살아돌아왔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이 모든 일의 발단이 된 아버지는 아이를 맡긴 채 돌아오지도 않고 있는데.
<후견>은 더욱 특수한 상황이다. 아버지가 교장선생님인 정소명은 미혼인데 갑자기 입양간 한국아이가 엄마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는다. 게다가 그 엄마가 정소명이라고. 정소명은 실제로 그런적이 없기 때문에 이를 부인하지만 입양단체에서는 다들 누구나 그렇게 부인한다며, 아예 소명의 이야기를 믿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서류를 보니 아이가 외국으로 입양갈 당시 생모의 싸인이 있는데 그게 바로 정소명인 것. 그의 아버지는 자기 손주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좁은 동네에서 말 나올 게 분명하니 차라리 그 아이를 만나서 고향일 게 분명한 이 곳을 구경시켜주라고 한다. 소명은 학창시절을 떠올리면서 대체 누가 나에게 억한 심정이 있어서 내 이름과 인적사항을 적어넣었는지 조사를 시작하고, 당연히 진척은 없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걸어둔 자기의 인적사항 덕분에 얼마든지, 누구든지 - 실제 이 고향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싸인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 놓일 일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도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편혜영의 문체 때문이다. 소설일 뿐인데 어디서 마치 일어났을 것처럼 담담하게 서술한 것에 속절없이 빨려들어간다. 뒤가 너무 궁금해!
<좋은 날이 되었네>에서는 바닥을 쳤을 때 비로소 솟아나는 부모자식간의 사랑을 보았다. 그럼 희망차야 하는데 미안하지만 불가능이다. 나는 소설 말미에서 엄마든 아들이든 죽는 걸로 끝날까봐 조마조마 했다. 둘다 너무 큰 빚더미에 앉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정상으로 돌아오기도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하고는 담 쌓았던 아들이 엄마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준비하는 듯한 마음이 들어서 그래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상한 가족들이다.
나머지 세 편의 단편들도 여전히 가늠못할 슬픔에 힘없이 버려지는 인물상을 보게 되지만 자세한 평은 다른 독자들을 위해서 자제 한다. 그렇지만 꼭 한번 편혜영의 소설세계에서 부서지고 깨진 평범을 경험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