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어는 이것이 실험적 한계와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있느냐고, 기술이 발전한 미래 세대는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물질 자체에 관계된 것이고, 만물이 창조되는 방식을 지배하는 원리이며, 어떤 현상이 완벽하게 정의된 특징들을 한꺼번에 가질 가능성을 배제하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애초 직관은 옳았다. 양자의 실체를 '보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양자가 단일한 정체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양자의 성질들 중 하나를 규명하면 다른 것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양자계를 기술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림도 은유도 아니라 숫자의 집합이다. pp.176/209
보어는 이것이 진정으로 새로운 물리학의 주춧돌이라고 생각했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결정론의 종말이라고 하이젠베르크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하이젠베르크 의 불확정성 원리는 뉴턴 물리학이 약속한 시계장치 우주를 믿는 모든 사람의 희망을 갈기갈기 찢었다. pp.177/209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은 미래도 아니요 과거도 아니요, 현재 자체다. 한낱 입자 한 개의 상태조차 완벽히 파악할 수 없으니 말이다. 기본 입자를 아무리 꼼꼼히 조사하더라도, 모호하고 미확정적이고 불확실 한 것은 언제나 남기 마련이다. 마치 실재가 우리로 하여금 한 번에 한쪽 눈으로 세상을 수정처럼 투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허락하되 양 쪽 눈으로 인식하는 것은 결코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pp.177/209
전자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움직이는가와 같은 기본적인 것을 한꺼번에 알 수 없다면 우리는 전자가 두 점 사이에서 어떤 경로를 따를지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으며 가능한 여러 경로만을 예측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슈뢰딩거 방정식의 기발한 점이었다. 입자의 무한한 운명, 모든 상태, 모든 궤적을 파동 함수라는 하나의 체계로 엮어 모든 것을 겹친 채로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입자는 여러 방식으로 공간을 통과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 하나만 고를 수 있다. pp.178/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