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모든 책임을 그 사건으로 돌리고 싶어졌다. 어리석은 결정, 잘못한 일, 망쳐버린 관계와 실패한 자금 운용 따위를 모두 탓할 수도 있었다. 한때 무용은 그렇게 했다. 자신이 여전히 어두운 강당을 배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든 그날로 돌아갔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 거실에 놓인 집전화가 오랜맘에 울렸다. 늦은 시간 울리는 경우는 드물어서 벨 소리가 의미 있게 들렸다. 무영은 허둥대며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 상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끄러운 차 소리나 음악소리, 누군가 떠드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고요한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런 순간을 겪은 적 있었다. 붕괴가 끝난 후 잠시 어둠을 마주했던 먹먹한 시간.
“수오니?”
무영이 물었다. 상대는 답이 없었지만 어쩌다 낮은 숨소리를 들려주었다. 그 소리를 차분히 되새기다가 문득 수오가 말했던 마지막 말이 무엇일지 떠올렸다. 처음에는 수오가 말해주었는데 자신이 듣지 못한 줄 알았고 그 생각을 믿었다. 이제야 수오가 애당초 그 말을 하지 않았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어떤 말은 내내 품고 있지만 결코 소리 내어 말할 수 없게 된다는 것도.
(리코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