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에 챌린지에 도전한 책은 6권이다. 15일 사이에 6권이면 많을 수도 많지 않을 수도 있다. 평상시라면 상당히 버거운 양이다. 직장생활하며 소화하기 쉽지 않아서 많은 분량이고 다행히, 지금은 방학이라서 밀린 독서를 하려고 작정을 했을 때는 많지 않은 분량이다.
쨌든, 도전한 도서 6권의 읽고 챌린지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했다. 기간이 짧은 도서를 먼저 읽거나 마음내키는 대로 읽을 수도 있다. 기간이 짧은 도서가 두 권이고 이 책은 그중의 한 권이다. 마음이 동하느냐는 기준에 의하면 충분히 그렇다였다. 미션 시작전 예습 차원에서 드라마 <안나>도 정주행하는 등 제법 준비를 했다고도 할 수 있다. 충분히 기꺼이 마음이 동했다. 얼른 읽어보고 싶어졌다.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된 소설을 같이 읽을 때는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원작을 더 깊이 읽을 수 있다는 것. 깊이 읽는다는 것은 분석하고 이해하며 읽는 것을 넘어 감정으로 읽는 것이다. 공감하고 동요되고... 책이 나를 가지고 놀게 내버려 둔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인물들의 감정 (사실은 작가의 감정일 수도)에 농락당하다 보면 가슴에 남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이 오래도록 머리에 남아 (심지어 냄새까지 느끼게 한다.) 언제든지 떠오를 수 있게 된다. 운이 좋으면 타산지석의 교훈을 얻고 '나'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뀐다는 것은 '사람'이 변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독서한다는 것의 가장 큰 덕은 바로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그러니까, 아는 것은 많은데 하는 행동이 어린애 같다면 그 사람은 헛된 독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맘대로. 너무 진지한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독서를 한다면 반드시 일어나는 당연한 결과 중의 하나인 사실을 기술한 것 뿐이다. 암튼, 깊이란 그런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단점도 있다. 이번에 특히 그랬는데, 영상의 화려함과 자극성의 깊이 때문에 원작을 읽는 내내 수지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드라마에서는 마지막 '변신'인 남자가 되는 것은 나오지 않는다. 그냥 한 부분을 깊게 극화했고 작가시점도 등장하지 않는다. 해서 원작을 읽었을 때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어떤 부분을 버렸고 강조하고 버린 이유도 생각하게 되기도 하는데, (그러고 보니 이건 장점인건가?) 수지의 아름다운 얼굴이 내내 떠나지 않는다는 단점이 생겨버렸다. 말하고 보니 단점인 듯 아닌 듯 단점이 되어버렸다. 영상이 매우 강력하다는 점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주저리가 되어버렸다. 영상은 마카롱같아서 충분히 맛있지만 건강에 도움이 되는 곡물빵같은 단맛이 없고 거친 빵을 먹고 싶어하지 않게 되는데,장기적 관점으로 보면 매우 좋지 않기 때문에 되도록 영상물을 안 보려 하긴 한다.
워낙 이야기성이 강해 읽어나가는데 거침이 없는 책이다. 그것은 마치 연속극을 보는 심정과 같다. 다음 이야기가 (회차) 궁금해져서 한 번 손에 들기만 한다면 궁금해져서 도저히 중간에 끊을 수가 없다. 화장실에서도 읽었다. 이렇게 끊임없이 변신을 하다보면 소재가 고갈되지 않을까, 그래서 기계적인 변신만을 거듭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들었다. 그 기계적인 것은 실망감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다행히 적당한 선에서 분량에 맞게 변신을 마쳤다. 더 길어졌으면 실망했을 뻔 했다.
요즘 이 프로그램에서 읽게 되는 겹치는 코드가 있는데, 동성애적 관점이다. 다른 책에서도. 겹쳐서 읽게되어 반복이 되다 보니 동성애는 문학계 코드의 하나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별로 관심이 가는 주제는 아니라서 나는 패스한다. 잘 알지 못해서 패스이다. 단, 불편한 지점이 있다. 동성애를 이해하지 못하면 진보가 아니거나 모자란 사람일 것이라는 관점이다. 특별히 편견은 없지만 어느덧 진영화 되는 것은 반대다. 이성애든 동성애든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해 생기는 폭력성을 극복하자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나에게서 너에게로 가는 길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평생 '나로서' 살아갈 운명일지도 모른다. 인간이라는 종은.
순전히 나의 느낌인 것 같은데, 글쓰는 자로서 느끼는 좌절, 절박함, 한계성 등이 글 속 작가를 통해 느꼈다. 작가의 눈과 손을 통해 '전해지는' 이유미라는 인물을 통해 그 인물이 살아나는 과정을 겪으면서 소설 속 작가도 해방되고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코드 '이혼'도 빠짐없이 등장해서 지상파, 케이블 할 것 없이 등장하는 이혼=새로운 출발=자기해방=성장이라는 도식이 여기서도 등장하는 것은 아닌지 조금 염려됐다. 그렇게 쉽게?해방이나, 성장, 자유가 그렇게 쉬운것인가? 하는 생각말이다. 살짝 실망하려는 찰나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는 설명이 차근차근 구축되어 있어 그만 끄덕하고 말았다. "그래, 그럴 수 있어."하고 말이다.
요즘 들어서 더 느껴지는 사회 부조리도 이유미와 안나를 통해 읽을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점에 방점을 둘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분위기로 이 나라 최고의 자리에 오른 여성도 떠올랐다. 다른 나라에서는 <안나>를 그린 이 사람이 그녀라고 소개했다고도 한다. 불투명한 과거행적, 의심스런 언론과 기득권의 대처가 그런 의심을 더 확신하게 한다. 만약, 의심이 사실이라면 온 나라를 속였고 그게 통했던 새로운 '능력자'가 되는 것이다. 요즘의 능력주의, 이기면 그만이다라는 것이 통용되었던 시대로 후세는 읽을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소설을 별로 읽지 않았던 나의 궤적과 이제 맛을 들여가고 있는 과정에 있는 나로서는 흡인력있게 읽어내려 갔던 재미있는 책이었다.
진실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 점점 부담스런 세상에서, 거짓과 진실의 경계가 모호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