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읽은 책입니다. 작년에 읽었을 때의 기억이 좋았는데, 역시 책은 한 번 읽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읽은 후의 느낌이 좋은 책은 두 번은 읽어야 제대로 읽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는 후기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227쪽) "'어쩌면'이라는 부사만큼 내 소설과 닮은 낱말이 있을까. 불확실하고 짐작에 의존하고 끝내 알 수 없는 마음일 때 자주 이 낱말에 의지했다."
이 소설집의 소설들은 작가의 말에서처럼 이렇게 모호하고 불확실하고 끝내 알 수 없었다. 작가는 뭔가 짐작할 만한 실마리들은 던져주지만 더 이상 아무런 설명을 덧붙여주지 않는다. 우리는 이야기의 단상들을 통해 미루어 짐작하고 인물들의 마음을 추측할 뿐이다. 그래서 아프고 답답하다. 뭔지 모르겠다.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그 답답함은 진행된다. 문제는 드러나지 않고 안으로 스며든다. 스며들고 스며들다가 둑이 터지듯 터져 버린다. 리코더 (105쪽) "시설 관리자의 부주의와 방심, 가연성 소재의 무분별한 사용, 경비절감을 위한 시공 기간 단축과 불량 자재 사용, 관리감독자의 허술한 승인 등의 결과"로 붕괴사고가 일어난 것처엄, (113쪽) "간혹은 모든 책임을 그 사건으로 돌리고 싶어졌다. 어리석은 결정, 잘못한 일, 망쳐버린 관계와 실패한 자금 운영 따위를 모두 탓할수도 있었다." 에서 처럼 한 가지 사건은, 현재는 많은 결정과 우연이 겹겹이 겹쳐져서 일어난다. 수습을 해야하지만 막막하다. 어디에서 시작할지 알 수 없다.
홀리데이 홈 (72쪽) "어떤 때는 일으켜 세우기만 해도 자기가 넘어진 곳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에서 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넘어졌을 때 누군가 일으켜 줄 사람이 필요하다.
같은 작품 (73쪽) "다른 사람의 일은 아무리 놀라워도 듣고 얼마 지나면 잊어버린다."에서 처럼 우리는 소설 속 이야기에 깊이 빠졌다가도 얼마 지나면 잊어버리기도 한다.
소설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좀 더 놀랍지만, 좀 더 기구하지만, 우리들 일상에서 반복되는 일이다. 하지만 (113쪽) "어떤 말은 내내 품고 있지만 결코 소리 내어 말할 수 없게 된다"처럼 우리는 소래내어 말하지 않는다. 작가가 대신 말해 준다. 그리고 때로는 잊고, 때로는 무시하고, 때로는 회피하지만 삶은 그리고 생각과 결정은 우리의 몫이다. 시작점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