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이 흩날리는 제주를 생각한다. 그 눈이 쌓이고 쌓여 세상이 적막에 잠기는 것을 바라본다. 책을 덮은 지금도 여전히 애틋하고 먹먹하기만 하다. 활활 타오르는 불이 느껴지기도 하고 쌓인 눈밭에 온몸이 묻힌 기분이 들기도 한다.
눈이 묻은 얼굴을 털어내던 소녀와 눈을 감지도 뜨지도 못한 채 그들의 얼어있는 얼굴을 살피던 어린 소녀를 떠올린다. 아무 잘못도 없이 고통스럽게 죽어가야만 했던 이들을 떠올린다. 감히 그들의 고통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겠다. 떠나간 이들과 뒤에 남겨진 이들의 아픔이 글을 읽는 내내 절절하게 느껴져 계속해서 아프고 서러웠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했을까.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었을까. 인간이 저지른 악행, 그 잔인함과 비정함에 몸서리가 처진다.
눈 내리는 제주를 보면 생각날 것이다. 인선이 맞으며 자란 눈송이가, 얼어있던 얼굴들 위로 쌓이던 눈송이가.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릴 때면 아미와 아마가 떠오를 것이고 벽에 비친 그림자를 보면 인선이 말해준 이야기가 떠오를 것이다. 아니메, 아니메, 하고 울부짖던 목소리가 들릴 것이다. 잊지 않겠다.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얼굴에 쌓였던 눈과 지금 내 손에 묻은 눈이 같은 것이 아니란 법이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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