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한강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전에 ‘소년이 온다’를 무척 잘 읽었는데, 이번 소설은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한 것이었다. 서울에서 사는 경하가 제주에 사는 친구 인선의 연락을 받고 그의 부탁으로 제주에 내려가면서 꿈인듯 생시인듯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필 가는 도중 폭설이 내려서 경하가 눈을 맞으며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부분의 묘사가 세밀해서 머릿속에 그 모습이 그려질정도였다.
인구 10분의 1인 3만명이 공권력에 의해 학살당한 사건을 간접적으로 소설 속 등장인물의 말을 통해서 읽는 내내 가슴이 아리고 먹먹했다.
<보라고, 네가 잘 보고 얘기해주라고 이모가 말할 때마다 눈을 뜨고 억지로 봤대. 그날 똑똑히 알았다는 거야. 죽으면 사람의 몸이 차가워진다는 걸. 맨뺨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걸. (p.84)>
사람들의 시신이 가득한 학교 운동장에서 어린 아이 둘이 가족의 시신을 찾는 장면이 너무 가혹하고 슬펐다. 계속해서 사람들의 증언과 인선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참혹한 이야기가 중간중간 나오는 시적인 표현과 어우러져서 나에게는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덤덤하게 보이니 오히려 더 쓰라린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했다.이후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유가족들은 실종된 가족을 찾기위해 분투한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비단 유가족뿐만이 아니라 우리도 모두 기억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는 앞으로도 작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야. 정말 헤어진 건 아니야. 아직은. (p.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