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가 쌓여가며 윤곽이 선명해지던 어느 시점부터 스스로가 변형되는 걸 느꼈어.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더 이상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상태...... 심장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이미 떨어져나갔으며, 움푹 파인 그 자리를 적시고 나온 피는 더 이상 붉지도, 힘차게 뿜어지지도 않으며, 너덜너덜한 절단면에서는 오직 단념만이 멈춰줄 통증이 깜박이는......
그게 엄마가 다녀온 곳이란 걸 나는 알았어. 악몽에서 깨어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면, 그 얼굴에 끈질기게 새겨져 있던 무엇인가가 내 얼굴에서도 배어나오고 있었으니까. 믿을 수 없는 건 날마다 햇빛이 돌아온다는 거였어. 꿈의 잔상 속에 숲으로 걸어나가면, 잔혹할 만큼 아름다운 빛이 나뭇잎들 사이로 파고들며 수천수만의 빛점을 만들고 있었어. 뼈들의 형상이 그 동그라미들 위로 어른거렸어. 활주로 아래 구덩이 속에서 무릎을 구부린 키 작은 사람을, 그 사람뿐 아니라 그 곁에 누운 모든 사람들이 살과 얼굴을 입는 환영을 그 빛 속에서 봤어. 흑백이 아니라 선혈로 얼룩진 옷을 입고 그 구덩이 속에, 방금까지 살아 있었던 부드러운 어깨와 팔과 다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