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유와 상황으로 인해 나타나고 생겨나는 슬픔보다 더 큰 슬픔의 차원. 아마도 존재하고 있기에 가질 수 밖에 없는 슬픔. 존재 자체로서 지니고 가야할 슬픔. 그런 슬픔의 영역을 저는 이 시집에서 처음으로 감각한 듯 합니다. 그렇기에 부정하고 벗어나려는 것이 아닌, 그것을 나와 함께 잘 보살펴 나가고 또 "헤맬 수록 정확해지는" 지점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저는 슬픔을 겪은 사람이 좋아요. 제가 가진 슬픔의 영역이 있기에 그만큼 위태롭고 흔들리는 타인을 알아볼 수 있고, 또 다가갈 수 있어요. 반대로 그 나름의 슬픔을 가진 사람이라면 저의 비루한 슬픔도 알아봐 주겠지요. 타인의 슬픔이 조금씩 잊히지 않을 때, 저는 사랑할 준비를 조금씩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