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만 살펴보던 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도 여전히 지도 속 일원들 같고 나도 아직 지도 속을 걷는 듯했다. 지도 속 사람들과 부딪치고 지하철 노선도를 따라 이동하고 편의점에 들러 생수를 사면서 서서히 나는 그 장소와 같은 축척을 갖게 되었다. 익숙해진 다음에야 어떤 실감이 생겨나는 것이다. 낯선 골목을 걸으며 서서히 현실과 같은 축척을 갖게 되길 기다리는 동안 나는 길을 잃었지만 완전하게 안전 하다고 느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나 안도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pp.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