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없는 소리 중 결로 p95
땀에 젖은 옷을 벗고 샤워를 하다가 김이 서려 잘 보이지 않는 거울을 손바닥으로 뽀독뽀독 닦고 젖은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무언가 잊은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일일이 다 따져가며 기억하고 살다가는 미쳐버릴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카디건을 버린 것이 후회되었지만 버리지 않을 수도 없었다. 카디건을 볼 때마다 할머니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동생이 죽었다고 말하던 내가 떠올랐을 것이다. 나는 욕실의 온기가 사라질 때까지 한참 동안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이번에는 찬물로 샤워를 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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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목이 '결로'일까 생각했다. 온도차로 인해 대기 중 공기가 물방울 형태로 맺히는 현상.
눈물을 의미하는 듯하다. 동생의 죽음을 겪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세상을 살아가는 척 차갑게 가장한 내 마음에, 느닷없이 세 할머니의 따뜻하다못해 덥디더운 마음이 와닿아, 결국 눈물로 흘러내리는 순간을 포착한게 아닐까.
무언가 잊은 것이 아니고 잊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날을 사는 그 순간에도 나는 기척없는 방앞에 혼자라는 사실이 가슴아팠다.
물기가 말랐으니 좀 가벼워졌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