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사회적 책임을 뜻하는 단어들은 끔찍할 정도로 불쾌하다. 나에게 '의무'라는 단어는 불청객만큼이나 불쾌하다.(...)나는 개혁가를 싫어한다. 개혁가란 세상의 표면에 드러난 악을 치료하기 위해 근본적인 악을 심화하려는 사람들이다.
162. 우월한 사람들에게 인생이란, 대결을 거부하는 꿈이어야 한다.
163. 직접경험은 상상력을 타고나지 못한 이들의 핑계이고 도피처다. 나는 호랑이 사냥꾼이 겪는 위험에 대해 글을 읽음으로써, 느낄 만한 가치 있는 모든 모험을 경험한다. (....)행동하는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사고하는 인간에게 종속된다. 모든 일들의 가치는 해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164. 왕이 되지 않으면서 상상하는 것이 왕좌다. 원하지 않으면서 꿈꾸는 것이 왕관이다. 우리가 단념한 것이 진정한 우리 것이다. 우리가 단념한 것은 우리의 꿈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햇빛과 있을 수 없는 달빛 아래 완벽한 상태로 영원히 보존될 수 있기 때문이다.
172. '운명'은 내게 단 두 가지를 베풀었다. 회계장부와 꿈꾸는 능력.
175. 오늘날 세상은 어리석은 자, 무감각한 자, 정신없이 동요하는 자의 것이다. 오늘날 인생을 살아가고 승리할 자격은 정신병원에 입원할 자격과 거의같아졌다. 그 자격은 사고력의 결여, 부도덕함, 지나친 민감함이다.
176. 믿음과 비판을 연결하는 길 중간에 이성이라는 여인숙이 있다. 이성이란 어떤 대상을 믿음 없이도 이해할 수 있다는 개념이지만 그래도 역시 믿음이다.왜냐하면 이해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뭔가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178. 쾌락이라는 것은 얼핏 보기에 삶 속으로 깊이 몰두하는 일 같지만, 사실은 우리 자신 안으로 몰두하는 것이고, 우리와 삶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며, 죽음의 흥분해서 들뜬 그림자다.
181. 나는 누군가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 어찌나 생생하게 들려주는지, 마치 세상이라는 책의 한 장에서 "그 시각, 한 남자가 천천히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라는 첫 구절이 살아나 내 모습이 된 것 같다.
182. 삶이 시작되기도 전에 나는 물러나버렸다. 꿈에서조차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꿈 자체가 피곤했다.
188. 생각하는 것은 곧 파괴하는 것이다. 생각 자체가 생각의 과정을 통해 파괴되는데, 왜냐하면 생각하는 것은 해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93. 나는 한번도 전투에서 승리해본 적이 없기에, 전날 밤 다음 전투의 계획을 세우면서 불가피한 후퇴의 세부 사항을 지도에 그리며 즐기는 침울한 전술가다. (...)어떤 사람들은 희망 없이는 삶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희망이 있으면 공허하다고 말한다. 기대도 실망도 않게 되자 내게 인생이란 단순히 나를 포함한 한 장의 그림이 되었다.(...)나는 책속의 인물, 읽힌 삶이 돼 버렸다. 내가 느끼는 것은 (내 의지와는 달리)내가 느꼈다고 쓸 수 있는 방식으로 느껴진다. (...)그렇게 자꾸 나 자신을 생각하다보니 나는 내가 아니라 내 생각이 된다.
194. 끔찍한 피로감이 내 마음속 영혼을 채운다. 내가 한번도 되어본 적이 없는 존재 때문에 슬프다. 그 존재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해질녘마다 내 희망과 확신에 부딪혀 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