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동행없이 떠나 본 여행은 제주여행이다.
우울증에 허우적 거릴 때 직장엔 한 달간 병가를 냈고 첫 주와 둘째 주는 집안에만 처박혀 있다 그야말로 느닷없이 떠난 여행.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고, 17층인 아파트 베란다에서 아래를 자꾸 쳐다보며 떨어지면 얼마나 아플지 뛰어내리지도 못할 거면서 아니, 조금만 발뒤꿈치를 들 힘이 있었다면 뛰어 내렸을 것 같은 시절이었다.
4박 5일 일정으로 비행기표를 끊고 숙소를 예약하고 둘레길을 무작정 걷기로 작정하고 떠났다.
제주에서 버스로 이동하고 내려서 오로지 둘레길을 표시하는 표식을 따라 걸으면서 울분을 스스로 씻어냈던 것 같다. 한참을 걷다보니 너무 피곤해 딴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가 되기를 몇 번을 반복하니, 조금 힘이 나는 것도 같았다. 붉은 흙, 내리쬐는 햇빛, 낮은 돌담길 외엔 생각나는 감각적 기억이 없다. 대상이 뭔지도 모르면서 싸우면서 걷던 기억만이 있을 뿐이다.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느낌이 들거나 우울증에서 회복된 느낌이 든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도 내 맘대로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한다. 병가를 낸다는 것도 나에겐 큰 일탈이었으니까. 식구들 세 끼 차릴 의무를 훌훌 던진 것도 큰 일탈.
세상은 그 후로도 나에게 친절하지 않았고 여전히 힘겨웠는데, 그냥 견디다 보니 서서히 아픈 기억이 희미해진 기분이다. 그렇게 먼지 한 톨 만큼도 거저 살지 않은 성실함을 자랑으로 여겨야 할까?
그 여행이 생애 처음 여행은 아니지만, 나 혼자 반항하듯 떠난 여행이라 기억에 좀 남는다.
코로나때문에 오도가도 못하다가 이제 여행길이 열리는데, 또 한 번 나 혼자 떠나는 여행을 결심해본다. 여행할 곳도 정하지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