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전쟁과 그다지 먼 나라가 아니지만 너무 오랫동안 정전시대를 살아와서 전쟁에 굉장히 무감하기도 한 것 같아요. 인류사에 전쟁은 단 한 번도 멈춘 적 없지만 이렇게 가깝게 다가온 전쟁은 걸프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하나 막연히 상상해본 적은 있어도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르겠죠. 이 책을 읽는 내내 러시아 지도자라는 사람의 후안무치함에 분노하고, 집과 자유와 가족을 잃어야 했던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평온을 빌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참 이기적이라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만약 우리나라에 전쟁이 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하는 것이었어요. 아파트에 사는데 지하로 대피가 가능한지, 은행에 돈을 넣어놓는 만큼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지, 오래 저장할 수 있는 식료품을 구비해야 하는지, 전쟁이 나면 빨리 죽는 게 편할지 어떻게든 빨리 피난을 가는 게 좋을지.... 그런 생각들을 하며 부끄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어요.
인류는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할까요. 모 도서의 제목처럼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데 왜 다정한 사람들은 자꾸 힘들게만 사는 것 같고 타인을 착취하는 사람들이 더 편하고 좋은 삶을 누리는 것 같을까요. 그들처럼 살면 나도 편해질까 하는 생각도 자주 해 보고요. 고작 한 명의 이기적인 판단으로 일으킨 전쟁을 이 많은 사람들의 염원으로도 멈추지 못한다는 게 너무 큰 무력감을 안겨줍니다. 정말 데스노트라도 있었으면 싶고.....
그래도 열심히 살아남아 타인을 돕고, 고통에 공감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여전히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레벤니크 작가님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이 책의 출판을 결정하시지 않았을까요. 작가님이 어서 고국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Pray for Unkr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