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날이 덥고 습하니 점심 이후 2시경이 되면 온 몸이 축 늘어진다. 다행히 오늘은 시에스타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대신 ‘고독’이 그 시간을 드리웠다. 최승자 시인의 개정판 에세이는 사실 좀 읽기가 주저됐다. 검은 표지처럼 어두워질까봐 두려웠달까. 하지만 생각보다 술술 읽혀서 놀라웠다. 시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나 보다. 알고보니 이 분도 죽음 앞에 홀로 고독하게 서 있는 한 사람이었을 뿐. 사막에 닿은 물 한방울 같은. 어찌할 수 없는 소멸 앞에서 미약하고 외로운 혼자.
책을 덮고 이 고독한 양장본에게 친구를 선물하고 싶어졌다. 표지가 환하고 밝은,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놓쳐 서로가 필요한 등장인물들이 대부분인 책 한 권을 나란히 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