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중한 할머니에게
할머니, 안녕. 할머니라고 하니까 웃기다.
보통은 내가 늘 자기야, 순용씨 이렇게 부르는데, 뭔가 할머니라고 부르니 거리가 생긴 것 같네? 조금 어색하게 웃겨.
편하게 써볼까?
순용씨, 기억나? 나는 스물네살의 봄을 부정했고, 순용씨는 일흔셋의 겨울을 보내고 있었을 때,
내가 다시 아파 거리를 걸을 때에도 얇은 맨투맨만 입고 그렇게 할머니네 갔을 때, 순용씨가 마음이 아프다면서
울었잖아. 할머니네랑 우리집이 가까워서 15분동안 걸었을 뿐인데 내 손을 잡으면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니 하고 울었잖아.
그때는 내가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었어. 내가 현실에 잠겨서 눈을 뜰 수가 없었지.
몇달이 지나고 나서 휴학기간동안 영어공부하겠다고 좌석버스에 앉아 강남으로 향할 때마다 방금 막 끝난 카페 알바의 커피 냄새가 빠지기도 전에, 그 버스가 할머니네를 지나갔잖아.
울면서 전화했을 때도 있었고, 같이 밥을 먹다가도 얘기했는데, 내가 이제 무언가를 해줄 수 있게 되니
할머니가 이제 날 지켜주는 어른이 아니라 내가 지켜야하는 어른이 되어 미안하다고 미안해 순용씨 하고 철없이 울었는데
예쁘다며 괜찮다며, 그런거라면서 날 손으로, 호흡으로 안아줬었던 거 기억하지?
지금 생각하니 할머니가 속상했을 것 같아.
할머니가 늘 마음이 약한 내가 하루를 견디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걱정된다면서 맛있는 거 많이 먹으라고 음식도 갈때마다 해주고, 그냥 할머니 보고 싶어서 오늘 저녁먹으러 갈게 하면 자연스럽게 응, 뭐 먹고 싶어? 하고 물었잖아.
순용씨, 그때마다 내 안에서는 늘 사랑이 켜켜이 쌓여가다 못해, 남에게 나눠줄 수도 있게 되었어.
밥을 먹다가 내가 이 순간이 영원하면 좋겠다고 말하면, 기억해주면 되지 하고 웃어주던 순용씨가 있어서
나는 지금도 행복해. 나는 지금도 괜찮아지려고 매일을 노력해.
할머니, 할머니는 나와 함께한 나날이 즐거웠어? 우리와 함께 했던 하루하루가 좋았어?
나와 대화하면 나의 말엔 항상 재간이 있다며 웃다가 못해 울면서 웃던 할머니가 행복한건지 항상 궁금해.
할머니가 저번주에 그랬잖아. 할머니 행복만큼 오늘 하루 행복하라고. 그래서 내가 그런건 각자 해결하자. 했더니
또 전화기 너머로 크게 웃어줬잖아. 나와의 대화가 늘 힐링이라며, 뉴스에서 배운 요즘 단어도 자주 써주고.
자기랑 함께한 날이 내게 많아서 나는 그 날을 다 기억하려면 한세기를 지나도 부족할 것 같아.
난 순용씨덕분에 정말 행복한대. 순용씨는 행복한지, 진짜 궁금하다. 나는, 우리는, 할머니에게 행복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