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드랑이 아래쪽에 큰 점이 하나 있었다. 옷을 입으면 보이지 않는 자리지만 수영장이나 해수욕장에서 점을 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혹시 전쟁나서 죽거나 이산가족이 되면 이 점으로 나를 알아볼 수 있지 않겠냐'며 농담처럼 이야기했었다. 진짜 전쟁을 겪어 본 할머니는 내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부정탄다고 등짝을 때렸지만, 나는 전쟁이 그저 실없는 농담의 소재가 되기도 하는 그런 시대를 살았다. 그러니 21세기에, 저기 아프리카나 중동이 아닌 곳에서 내전도 아니고, 국가가 다른 국가를 침략한 전쟁이 일어났다는 건 꿈을 꾸듯 비현실적이게만 느껴졌다.
그러니 나는, 만약을 대비해 아이들의 팔목에 이름을 써 넣는 엄마의 마음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후원창에 댓글을 달아 천원정도를 기부하고, 무슨 이런 일이 있냐며 술자리에서 욕이나 조금 하면서 그렇게 그 전쟁 자체를 사실 나는 잊고 있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떤 상황인지 부랴부랴 검색을 해 본다. 러시아가 리시찬스크를 장악했다고 하는데, 그곳이 어딘지 무슨 의미가 있는 곳인지 모르니, 그저 우크라이나에 안 좋은 상황으로 흐르고 있구나.. 정도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전쟁 초반 현지 상황을 꽤나 구체적으로 전하던 기사들은 이제 거의 자취를 감췄고, 전쟁 관련 기사들은 대부분 이 전쟁 때문에 에너지나 곡물의 공급망에 어떤 차질을 빚고 있는지 그래서 세계 경제가 어떤 영향을 받는지, 그 때문에 우리나라 경제는 어떻게 되어갈 것인지를 훨씬 중요하게 다룬다.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벌어진 그 곳에, 밤새 포탄이 떨어지는 그 곳에 "사람"이 있다는 걸 잊은 듯이...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는 채로 엄마와 남편을 두고, 35년의 인생을 통째로 두고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데 걸린 시간 고작 10분. 그렇게 인생이 조각난 사람들의 눈물이 있는 한 전쟁은 농담일 수 없고, 농담이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전쟁을, 감히 농담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내가 감히 그래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