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 누구도 아닌, 농인 길경희와 농인 이상국의 첫째 딸이 아닌, ‘보라’이고 싶었다.
언제 어디서나 부모님이 듣지 못한다는 걸 가장 먼저 말해야 하는 일. 주눅 들지 않고 밝고 씩씩한 표정으로 지내야 하는 일.
혹시라도 누군가 부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부모보다 먼저 알아채는 일.
누군가 기분 나쁜 말을 하면 통역하지 않고 내 선에서 걸러내는 일.
절대로 화를 내거나 울음을 터뜨리지 않는 일. 부모에게는 세상의 부정적인 소리와 나쁜 말을 전달하지 않는 일.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부모의 세상을 사랑했지만 홀로 짊어지기에는 무거웠다.
장애, 선입견, 고정관념, 그 모든 것과는 상관없이 그저 ‘나’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