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온 우주가 하나의 실수인 양 모든 것이 잠들었다.(...)갑자기 새로운 우주의 질서가 도시를 지배하고, 소강상태에서 바람은 불어오고, 하늘 높은 곳의 무수한 흔들림을 졸음 속에서 감지한다. 마루 바닥문이 닫히듯 밤이 닫히자 거대한 고요가 밀려와 나는 잠들고 싶어진다.
33. 우리 모두는 외부환경의 노예다. 태양이 환한 날은 좁은 골목길의 까페에 앉아서도 넓은 들판에 있는 것처럼 느끼고, 하늘이 흐린 날은 야외에 있어도 문없는 집같은 우리 자신속으로 몸을 웅크린다. 아직 낮의 사물들 안에 있을지라도, 밤의 왕림은 이제 쉬어야 한다는 내밀한 의식을 천천히 펴지는 부챗살처럼 펼친다.
34. 신앙의 망령에서 이성의 망령으로 가는 것은 감방을 옮기는 일과 같다.
35. ....인류를 위해 일하거나, 나라를 위해 희생하거나, 문명이 지속되도록 자신의 목숨을 거는 사람들에게 뿌리깊고 진저리나는 경멸을 느낀다...그 경멸은 지루함으로 가득찬 감정이다. (...)꿈이야말로, 내게는 더욱 중요한 현실이다.
36. 외관상으로 볼때는 내 삶과 나란히 있는 그들 삶의 추악한 단조로움이, 내가 가들과 같은 부류일 거라고 믿는 그들의 확신이 내게 죄수복을 입혀 감옥에 가두고 나를 사기꾼, 거지와 같은 신세로 떨어뜨린다.
39. 내가 했던 일이나 생각은 모두, 내가 밖으로 드러냈다는 이유만으로 내 것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아니었던 허구적인 존재에 대한 복종의 표현이거나, 숨쉬는 공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상황의 무게에 대한 복종의 표현이었다. 지금 이 사실을 발견하고 보니, 항상 나는 이 도시에 소속되어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한낱 외로운 망명객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내 생각의 가장 깊은 중심에서 나는 내가 아니었다.
40.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실체는 대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죽음의 불가사의함이야 어차피 내가 뛔뚫어볼 수 없으니 그만두고, 삶이 멈출 때 육신의 감각이 궁금하다. 인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어렴풋이 두려워할 뿐이다. (...)그저 죽음을 깨어나지 않는 잠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얘기다. 강조하거니와 죽음은 잠과 닮은 점이 없다. (...)죽은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죽음이란 길을 떠나는 일 같다고 생각한다. 시체는 그가 떠나면서 남긴 옷과도 같다. 누군가 떠났고 그동안 입고 있던 유일한 겉옷은 그에게 더이상 필요가 없었다.
42. 언제나 똑같고 변화 없는 내 삶을 지속하는 무기력, 결코 변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덮고 있는 표면에 붙은 먼지나 티끌처럼 남아있는 이 무기력을 나는 일종의 위생관념의 결여라고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몸을 씻듯 운명도 씻어주고, 옷을 갈아입듯 삶도 갈아줘야 한다. 먹고 자는 일처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존중하기 때문에 그리해야 하고, 그것을 우리는 위생이라고 부른다. (...)위험에 직면했을때 공포에 질려 도망가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의 더러움을 역겨워하면서도 역겨움에 마비되어 더러움을 떨쳐내지 못하는 돼지들이 있다.
43. 추상적인 지성의 피로가 있는데 이는 피로 중에서 가장 끔찍하다. 육체의 피로처럼 무겁지 않고, 감정의 피로처럼 불안하지 않다. 온 세상에 대한 우리 의식의 무게라서 영혼이 숨쉴 틈마저 남기지 않는 피로다.
46. 나의 크기는 내가 보는 것들의 크기이지 내 키의 크기가 아니라네.(...)"나의 크기는 내가 보는 것들의 크기!" 내 영혼 전체가 된 그 문장을 나의 모든 감정을 기댈 의지처로 삼는다.
48.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나 자신을 파괴했다. 이해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을 잊는다. 나는 어떤 대상을 이해한 후에야 그것을 사랑하거나 증오할 수 있다고 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발언만큼 거짓인 동시에 의미심장한 발언을 알지 못한다. 고독은 나를 황폐하게 만들고, 동행은 나를 억합한다. 모든 분석력을 동원해도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특이한 방심 상태에서 곁에 있는 존재에 대해 꿈꾸기 때문이다.
49. 나의 습관은 고독으로 인해 생긴것이지 사람들로 인해 생긴 게 아니다.
50. 옷을 입고 사는 종족만이 나체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저항이 있을 때 더욱 큰 힘을 내듯이 수치심은 관능적인 매력을 더해준다. 인공적인 것을 통해 자연을 더욱 만끽할 수 있다. 이 광활한 들판을 즐기는 이유는 내가 이 들판에 살지 않기 때문이다. 통제받으며 살아본 사람만이 자유의 기쁨을 이해한다.
54. 낭만주의란 다름 아니라 평상시 우리의 일상을 통제하는 것들을 반대로 뒤집어 드러낸 것이다. (...)낭만주의에 대한 비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낭만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인간 본성의 내적 진실을 밖으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61. 자신의 삶을 어느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는 이는 축복받은 자다.